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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단상,성찰(연재중)

13번째 성찰 에세이-인생이라는 자(尺)

by mazimak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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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손에는 늘 짧은 자가 들려 있었다. 10cm짜리 플라스틱 자. 그것으로 책상 위의 공책을 재고, 연필의 길이를 측정하며 놀곤 했다. 자의 길이는 짧았고, 재어야 할 것도 단순했다. 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주변의 작은 세계 속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친구들, 학교와 놀이터, 그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었다. 그 시절, 세상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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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마다 나이가 한 살씩 늘어날 때마다 내 인생의 자는 조금씩 길어졌다. 처음에는 30cm, 그리고 50cm를 넘어 이제는 1m에 가까워졌다. 자가 길어질수록 재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나의 성적을 비교하고, 누가 더 빨리 뛰는지를 측정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자가 더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복잡한 것들을 측정해야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친구와의 관계를, 대학에서는 내 꿈과 현실의 거리를, 사회에 나와서는 삶과 성공의 기준을 재기 시작했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 길이는 어디쯤일까?’ 길어진 자만큼이나 고민해야 할 문제도 많아졌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했던 세상이, 이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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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득 깨닫게 된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자, 아무리 길어진다 해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자를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자를 반대편으로 넘길 것이다. 숫자가 빼곡히 새겨진 면이 아니라,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면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마치 우리 삶이 종착점에 다다를 때처럼.

처음에는 그 사실이 두려웠다. 나의 자가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결국엔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가 길어질 수 있는 동안,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의 자가 아직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아직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남은 길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후회 없는 길이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길이만 늘어난 자를 손에 쥔 채 마무리할 것인가. 자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욱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자는 해마다 길어지지만, 언젠가는 멈춘다. 그러나 그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자를 어떻게 사용했느냐일 것이다. 자가 길어지는 동안,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 마지막 순간이 찾아와 자를 뒤집어야 할 때, 후회 없이, 내 자의 길이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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