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교육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연 이 사회에서 교육은 여전히 ‘평등’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버린 걸까?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마이클 왈처는 ‘복합평등’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 가지 가치(특히 돈)가 모든 영역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제력이 있다고 해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은 교육 나름의 원칙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왈처의 기준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교육이 자본이 된 순간, 불평등은 시작되었다
한때 교육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다리’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누구나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현실에서는 돈이 많을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결국 더 좋은 직업을 얻을 확률도 높아진다. 사다리는 여전히 있지만,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사교육 시장이다. 학원, 과외, 대입 컨설팅 등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비용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공교육이 존재한다고 해도, 고가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이렇게 교육이 자본화되면서, 그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학벌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다시 그 부를 활용해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결국, 부의 대물림은 교육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셈이다.
왈처가 말하는 ‘복합평등’, 그리고 우리가 놓친 것
왈처는 『정의의 영역들』에서 각 사회 영역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돈이 많다고 해서 더 나은 정치적 권력을 가질 수 없듯이, 경제력이 교육의 질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은 그 자체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며, 학습자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사회적 공정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돈이 곧 교육 기회를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왈처의 개념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
왈처의 복합평등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사교육 의존도 낮추기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는 공교육만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학습을 따라가기 어렵다 보니, 많은 학생이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결국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를 키울 뿐이다. 따라서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맞춤형 학습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2. 대학 입시 제도의 공정성 강화
대입 제도 역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입시에서 블라인드 평가를 강화하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장학금과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부모의 배경이 아닌 학생의 노력과 재능을 평가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3. 교육 재원의 공정한 분배
지금도 지역별로 학교의 수준 차이가 크다. 교육 예산이 부유한 지역에 집중되면, 경제적 약자가 밀집한 지역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교육 재원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소외된 지역에 대한 교육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4. 부모의 사회적 자본이 교육 기회를 결정하지 않도록 하기
부모가 가진 인맥이나 지위가 자녀의 교육 기회를 결정하는 일도 문제다. 인턴십, 연구 기회, 해외 연수 등의 기회가 부모의 배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공개적이고 공정한 선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
왈처는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곧 교육 기회를 결정하고 있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교육이 부의 대물림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교육이 더 이상 경제력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사회, 돈이 아닌 배움 자체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단순히 제도적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을 통한 기회’라는 말은 결국 공허한 이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교육을 통해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브런치글
08화 교육이 자본이 된 사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왈처에 복합평등 실현가능성 |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교육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
brunch.co.kr
'1일 1단상,성찰(연재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번째 성찰 에세이-AI와 인간, 공존의 길을 찾아서 (1) | 2025.04.07 |
---|---|
9번째 성찰 에세이-불교와 양자역학 (0) | 2025.04.06 |
7번째 성찰 에세이-정명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 2025.04.04 |
6번째 성찰 에세이-디지털 미화 시대: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다 (1) | 2025.04.03 |
5번째 성찰 에세이-스티브 잡스: 혁신과 그 이면, 그리고 우리가 놓친 것들 (3)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