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유튜버의 주도로 수행평가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게 일고 있다. 해당 유튜버는 자신의 영상에서 수행평가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댓글을 통해 공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인용해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수능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공평하며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개념적 혼동에서 비롯된 오류를 내포하고 있으며, 교육의 본질과 평가의 목적을 오도하는 위험이 있다.
공정, 공평, 평등의 구분 없는 사용: 개념의 혼란
우선 ‘공정’, ‘공평’, ‘평등’이라는 단어가 혼용되는 현상은 단순한 언어적 실수가 아니다. 이는 교육 제도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구분점을 흐리는 것이며,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공평’이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 즉 동일한 조건과 자원을 동일하게 분배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공정’은 결과적 균형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 결과의 형평을 맞추려는 가치적 태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는 ‘공평’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공정’한 조치라 할 수 있다. 또한 ‘평등’은 그 안에 여러 층위가 있다. 산술적 평등은 같은 것을 주는 것이고, 비례적 평등은 기여나 필요에 따라 차등을 둔다. 기회의 평등은 시작선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은 도착선의 평등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공정, 공평, 평등을 하나의 개념으로 섞어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인 사고의 오류를 야기한다.
수행평가의 목적과 오해
수행평가는 단순히 ‘교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재학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입시 시스템의 획일성과 일회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중심 평가’의 한 형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수행평가가 유일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자사고나 사교육 혜택을 통해 수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수험생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소나마 보완하려는 시도가 바로 수행평가였다. 이는 교육적 기회의 형평을 위한 ‘공정한’ 제도였다. 이러한 맥락을 배제하고 단순히 ‘공평하지 않다’,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수행평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공정의 개념을 배제한 채 공평만을 추구하는 논리적 비약이다.
일회성 평가 강화는 기득권의 논리
수능이라는 단일한 시험 결과로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구조는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한 줄로 세우는 입시 문화는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짓누르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지닌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수행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다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교육적 시도였다. 이 시도를 단순히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폐지하려는 것은, 결국 입시 제도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단적인 예로, 수행평가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수능 자체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그리고 학력에 따른 불공정을 야기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수행평가의 객관성을 문제 삼기 이전에, 수능이 과연 진정으로 공정한 제도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평가제도 논의의 방향성
수행평가 폐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현재의 입시 제도가 얼마나 다양한 인재상을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 제도가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공정, 공평, 평등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교육의 본질을 되짚는 철학적 기반 위에서만 평가제도에 대한 합리적인 개편 논의가 가능하다. 수능 중심의 평가가 소외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수행평가는 오히려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였다. 그것을 없애겠다는 논리는 겉으로는 공평을 말하지만, 실상은 기득권 중심의 구시대적 평가로 회귀하자는 주장일 수 있다.
교육은 단지 줄을 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가능성과 삶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공정한 출발선과 균형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공동체적 과업이다. 평가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본질을 더 정교하게 고민할 때, 진정한 의미의 교육 개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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