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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얻는 ‘과정’이 그 가치를 결정할 때

mazimak 2025. 4. 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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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예약제와 소비자의 자기기만적 심리

베이글


우리는 종종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음식점에 줄을 서거나, 한정판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새벽부터 클릭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음식이나 물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진짜 최고였어.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객관적으로도 최고였을까? 아니면 기다림이라는 투자가 그 가치를 과장하게 만든 걸까?

런던베이글을 2시간, 제주 연돈을 3시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맛본 음식. 정말 그 맛이 그 기다림만큼 대단했을까?
사실 우리의 뇌는 ‘기다림’이라는 고생을 보상받기 위해, 그 결과물을 더 특별하고 훌륭하게 느끼도록 포장한다.
기다린 만큼 값지다는 착각, 어쩌면 그것이 진짜 맛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인지부조화의 해소’ 또는 ‘자기기만적 정당화’로 설명된다. 인간은 자신이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들인 대상에 대해 더 큰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이 합리적이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2시간을 기다려 음식을 먹었다면, 그 음식이 그냥 평범했다고 느끼는 건 스스로의 행동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맛을 ‘최고’라고 느끼게 된다.

이런 심리를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사전예약제, 한정판, 얼리버드 등은 단순한 판매 전략을 넘어 심리적 희소성을 자극하는 도구다. 줄을 서게 만들고, 대기 리스트를 길게 늘어뜨리며 소비자에게 “이건 쉽게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결국 소비자는 제품 자체의 품질이나 필요 여부보다도, 그것을 갖게 된 경로에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 브랜드는 이러한 경로를 ‘브랜드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가치를 부풀리는 데 활용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이 제품이 정말 좋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다린 내가 정당화되고 싶은 걸까? 물론 모든 기다림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기업이 조작한 ‘희소성의 서사’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소비자의 심리를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아는 순간, 우리는 보다 주체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기다림의 가치”를 외치기 전에, “기다림을 원하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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